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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상과의 대화(6) - 아브라함과 의로운 전쟁 조회수 : 74, 2021-03-02 11:07:05
관리자
위대한 사상과의 대화(Dialogue With the Great Thoughts / 6)

창세기 14: 11-16
아브라함을 생각하라(5)-아브라함과 의로운 전쟁(Just War)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13)

<개요>
  BC. 2115년경 북방 왕 4개 동맹군이 조공을 거부한 사해 남단의 소돔과 고모라 5개 도시국가를 공격했다. 이 때,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았던 소돔의 도시들은 북방 왕들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비참하게 패했다.

❚ 성경에 기록된 주요 전쟁
* 엘람 연합군과 사해5개 동맹국간의 전쟁(창 14: 1-2)
* 출애굽한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전쟁(출 17: 8)
* 이스라엘과 가나안 남부 동맹군의 전쟁(수 10: 1-5)
* 기드온의 이스라엘군 대 마디안의 전쟁(삿 7: 1-25)
* 이스라엘 11지파연합군 대 베냐민 지파 외의 전쟁(사사기 21장)
* 사울의 이스라엘군 대 블레셋의 전쟁(삼상 31: 1)
* 다윗의 블레셋 정복 전쟁(삼하 5: 17-25)
* 다윗의 모압 정복 전쟁(삼하 8: 2)
* 다윗과 그 아들 압살롬의 전쟁(삼하 15: 1-18: 33)
* 다윗과 세바 반란군의 전쟁(삼하 20: 1-2)
* 르호보암과 애굽 왕 시삭의 전쟁(왕상 14: 25-28)
* 아합-여호사밧 연합군 대 아람 벤하닷1세의 전쟁(왕상 20).
* 아마샤의 에돔 정복 전쟁(왕하 14:7)
* 웃시야의 블레셋,아라비아 정복 전쟁(대하 26: 6-7)
* 여로보암 2세의 아람 정복 전쟁(왕하 14: 25-28)
* 앗수르 살만에셀의 북이스라엘 정복 전쟁(왕하 17: 4-6)
* 요시야와 애굽 바로느고의 므깃도 전투(대하 35: 20-24)
*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2세 대 애굽 바로느고의 갈그미스 전투(왕상 24: 7)
* 바벨론 느부갓네살2세의 남유다 정복 전쟁(대하 36: 13-21)
* 바사 왕 고레스의 바벨론 정복 전쟁(단 6: 30-31)

❚ 싯딤 골짜기(the Valley of Siddim) 전투(창 14: 1-12)
  싯딤 골짜기 전투는 세상에 영걸이요 특이한 사냥꾼으로 기록된 니므롯의 정복 전쟁 이후에 벌어졌던 최초의 대규모 전쟁이다.
아브라함과 분가한 롯은 마치 에덴동산같은 사해 남단의 소돔에 정착을 했는데, 소돔은 주변의 도시국가인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소알(옛바알)과 함께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엘람왕 그돌라오멜에게 조공을 바치며 섬기고 있었다.
  12년 동안 순순히 조공을 바쳤던 소돔의 5국이 13년차가 되자 그만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 조공을 거부한 것은 바로 ‘반란’을 뜻한다. 소돔의 5국이 반란을 꾀한 것이다.
  12년 동안 조공을 바치면서 점차 소돔을 비롯한 5국은 힘을 길렀을 것이고, 또한 사해에서 나오는 많은 소금으로 인해 왕성한 무역에 힘입어 나라가 부강해지니까 교만한 마음도 생겼을 것이다. 본래 사해는 2세기경에 헬라인이 만든 말이다. 성경에는 사해를 소금바다 즉 염해라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소금이 많았다는 것이다. 빈궁할 때는 겸손하다가 넉넉하니까 교만으로 바뀌었고 그래서 그동안 엘람왕을 섬기다가 급기야 조공을 거부했다.
  이에 격분한 엘람왕은 1년 동안 회유기간을 주면서 동시에 전쟁을 준비했다. 그리고 14년차가 되자 소돔 5국을 평정하기 위해 강력한 동맹군을 편성해서 출정했다.
이들은 각개격파 전략을 구사하면서 소돔으로 내려오면서 차례로 아스다롯 기르나임에서 르바족속을, 함에서 수스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세일에서 호리 족속을 쳤다(창 14: 5-6).  또한 이들은 ‘왕의 대로’(King's way)를 따라 북에서 남으로 내려왔다. 이후 가제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쳤다. 이들의 진공로는 훗날 모세가 출애급한 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의 행군로와 아주 흡사하다.
  어쨌든 침공하는 북방동맹군은 하나로 집중할 수 있었고, 반대로 가나안 족속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흩어져 있었으니 힘이 분산되었다. 남부 가나안 동맹군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북부동맹군은 1년 동안 전쟁준비를 했을 뿐 아니라 원정길에서 이미 6족속을 쳐부순 실전 경험을 가졌다. 그에 반해 소돔 5국은 전쟁을 대비하기는커녕 축적된 부에 안주하여 교만하고 생욕과 쾌락의 구덩이에 흠뻑 빠져 있었다.      
  여기 소돔(Sodom)은 ‘큰 화재’라는 뜻인데, 훗날 하나님의 징계로 유황불을 받아 모두 타버렸기 때문에 이름이 잘 맞아떨어진다. 남색(男色)을 뜻하는 소도마이트(Sodomite)는 여기서 유래했다. ‘역청’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구약에서 물의 샘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는데, 보통 차내진 움푹 들어간 장소를 말한다. 그래서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을 추출하기 위한 구덩이가 많이 산재했다.
그런데 소돔의 군사들이 그 구덩이에 많이들 빠졌다.
병법에 따르면, 앞에 사지(死地)를 두고 뒤에 생지(生地)를 두어야 하는데, 전쟁 상황을 분석해 보면 소돔 5국은 병법과는 반대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후퇴하다가 크게 공략을 당했을 이유가 크다. 그 결과 북방왕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들과 재산을 빼앗고, 소돔에 거하고 있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가축을 사로잡아 포로로 끌고 갔다.  

❚ 아브라함과 북방왕 동맹군과의 전쟁
  소돔과 롯의 패배의 소식은 ‘히브리 사람 아브람’(Abram the Hebrew)에게 바람처럼 전해졌다. 히브리라는 명칭이 성경에서 처음 나타난다. 창세기는 아브라함이 북방 동맹군과 비교하여 그 계보가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
  깜짝 놀란 아브라함은 즉시 집에서 길러지고 훈련된 자 318명의 장정과 아모리 사람 약간 명을 데리고 구출작전에 들어갔다.
아브라함은 험한 골짜기와 기상을 무릅쓰고 악착같은 추격전 끝에 드디어 동맹군을 단(Dan)에서 따라잡았다(창 14: 14).
  단은 전략적으로 매우 가치 있는 곳이다.
단은 야곱의 다섯 번째 아들로서 야곱의 아내 라헬의 종 빌하가 낳은 첫 번째 아들이다.
단의 후손 가운데 삼손이 태어난다.
단지파는 가나안 정착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의 남서 모서리 지역과 최북동 가장자리를 차지했다.
단은 요단강의 수원이 되는데, 요단강은 단에서 내려온 강이라는 뜻이다.
  1948년 5월에 시작된 제1차 중동전쟁 당시, 아랍연합군은 단을 차지하기 위해 공격을 가해왔다. 이스라엘은 이들의 침공으로부터 단 지역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반격을 가했다. 만약 레바논을 필두로 한 아랍세력이 단을 확보하여 물줄기를 막아버리면 그 남쪽에 있는 이스라엘 요단강은 수량 부족으로 치명적인 어려움을 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북방 왕을 따라잡아 이들을 최초로 파한 장소가 바로 단이었으니 역사적인 감회가 깊다.  
북방의 침략군들은 자기네 나라로 회군하는 중에 물이 있고 쉬기 알맞은 단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휴식을 취했을 것이다.
  84세나 되는 어른이 헤브론에서 단까지 무려 220km이상을 추격해 나갔다. 전사가들에 따르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의 여러 험한 지형을 감안하여 적군의 향방을 쫒아 220km를 추격하는데 아무리 빨라도 하루에 50km를 넘지 않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추격은 적어도 4-5일 정도 걸렸을 것이라고 예측된다.
알렉산더는 인마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추격의 고비를 늦추지 말라했는데, 이런 것은 다 아브라함에게서 배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 왔더라”(창 14: 15-16).
  아브라함은 그의 군대를 나뉘었다. 부대 편성을 어떻게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주공, 조공, 예비대’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드온의 300용사가 세 대로 나누어 협공을 펼친 것처럼, 병력을 분산해서 치밀한 공격계획을 세웠다.
  특히 아브라함은 ‘밤을 타서’ 야간에 침략군들에게 기습 타격을 가했다. 당시는 주로 낮에 공격을 감행했는데, 아브라함의 야간 기습 작전은 당시로서는 놀라운 작전이었다.
아무리 강한 군사라고 할지라도 대비태세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기습 공격을 받으면 매우 당황하기 마련이다.
자중지란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해서 북방의 침략군은 단에서부터 후퇴하여 다메섹까지 철수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들을 다메섹의 호바(Hobah)까지 추격했다. 그리고 포로가 되었던 롯과 그이 식솔들과 친척들, 빼앗긴 재물들을 다 회수하여 승리의 복귀를 한다(창 14: 16).
  
❚ 교훈
첫째, 세속 전쟁 발발 요인
  1> 전쟁의 종류
   * 동족간의 전쟁(삿 12: 1-6; 삼하 3: 1)
   * 민족 간의 전쟁(마 24: 7)
   * 여러 민족 연합국간의 전쟁(창 14: 1-2)
   * 침략 전쟁(왕상 20: 1)
   * 방어 전쟁(삼상 11: 1-11)
  2> 전쟁 원인
   * 배반(창 14: 2,4)
   * 의견 충돌(출 2: 13)
  * 하나님의 섭리(출 17: 16)
  * 하나님의 시험(삿 3: 1-2)
  * 새 신을 택함(삿 5: 8)
  * 하나님의 심판(삼하 12: 10)
  * 통치자의 망령된 행위(대하 16: 9)
  * 죄값(사 42:  25)
  * 말세의 징조(단 9:  26)
  * 욕심(약 4: 1-2)
  * 마귀의 발악(계 11: 7)
3> 전쟁 목적
  * 국력 과시(삼상 11: 1-2)
  * 국토와 국민 방위(삼상 13: 1-4)
  * 영토 확장(삼하 11: 1)
  * 왕권 탈취(삼하 15: 10-12)
  * 반란 진압(삼하 18: 6)
  * 공물 요구(왕상 20: 1-4)
  * 국가 위협 요소 제거(왕하 14: 7)
  * 노동력 징발(왕하 18: 32)
  * 보복(대하 25: 17)
  * 재물 약탈(대하 28: 8)
  * 세력 균형 유지(대하 35: 20)
  * 타국 정복(대하 36: 11-21)
4> 전쟁에 대한 성도의 자세
  * 전쟁이 일어날지라도 두려워말고 하나님을 믿을 것(신 27: 1-3)
  *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 것(삼상 17: 47)
  * 전쟁보다 화평을 원할 것(시 120: 7)
  *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잠 17: 14)
  * 모략으로 싸울 것(잠 24: 6)
  * 전쟁을 방비할 것(겔 13: 5)
  *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말 것(고후 10: 3)
5> 전쟁에 대한 하나님의 뜻
  * 의로운 전쟁을 명하심(출 17: 16; 신 7: 1-2)
  * 하나님께서 함께 싸우심(신 20: 1,4)
  * 심판의 한 방법으로 전쟁을 사용하심(삿 2: 14; 슥 14: 2)
  * 전쟁에서 승리를 주심(삼하 23: 10; 잠 21: 31)
  * 전쟁에서 패배하게 하심(대하 12: 5-8)
  * 악한 전쟁을 금하심(대하 11: 4)
  * 악한 전쟁을 싫어하심(시 120: 6-7)

둘째,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지혜
인생을 살아가면서 갖추어야 할 지혜 가운데 하나가 유비무환의 지혜이다. 우리 말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은 사고가 난 다음 수습에 골몰하는 모습이다.  
  사전 대비를 강조한 말로 “비 오기 전에 창문을 고친다”는 뜻의 ‘미우주무’(未雨綢繆)란 말이 있다. 이는 “비 내리기 전 뽕나무 뿌리껍질로 틈새를 단단히 막았으니 누가 이 둥지를 허물 수 있으랴”(시경)에서 유래된 말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은 ‘평소에 준비가 철저하면 후에 근심이 없다’는 뜻이다.
  임진왜란 때 구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년 2개월 전인 1591년 2월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했다. 이순신 장군은 부임 즉시 왜군이 쳐들어온다는 전제하에 전쟁을 대비해 나갔다. 거북선은 총 3척이 건조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거북선은 임진왜란 발발 하루 전에 완성됐다.
거북선에서 ‘지자총통’과 ‘현자총통’을 시험 발사한 날이 왜군이 부산 연안에 상륙하기 하루 전인 1592년 4월 12일이었다.
  신앙의 세계에도 영적 유비무환이 중요하다.
<잠언 21: 31>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언 24: 27>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밭에서 예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
<벧전 4: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셋째, 의로운 전쟁(Just War)
  의로운 전쟁론을 정리한 분은 어거스틴이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어거스틴의 생각은 다분히 역설적이다.  
어거스틴은 누구보다도 평화를 추구했다.
어거스틴의 저작에는 평화를 일컫는 ‘pax’라는 단어가 2,500번 이상 나타난다. 어거스틴의 마음은 언제나 평화를 희구하는 기도로 충만하였다. 어거스틴은 전쟁을 혐오했다. 전쟁이 많은 욕망을 일으키는 죄의 결과로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거스틴은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말로 전쟁을 죽이는 것이 더 낫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어거스틴에게 있어 전쟁은 때때로 평화를 되찾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슬픈 의무였다.
전쟁에 대한 어거스틴의 이 역설적 입장은 초기 그리스도교 교부들이 지향한 개인적인 평화주의에다가 어거스틴이 󰡔하나님의 도성󰡕(De civitate Dei)에서 강조한 ‘질서의 체제 안에서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공적인 전쟁의 정당함을 결합시킨 ‘정당한 전쟁’(Just War)으로 집약된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지상의 평화는 항상 깨어질 수 있기에 불안하다. 그에 반해 천상의 평화는 영원하고 궁극적인 안식과 행복이다. 따라서 천상의 평화 유지를 위해 지상 평화의 파괴가 불가피하다면 그것이 전쟁이라 할지라도 용인될 수 있다.
  어거스틴은 전쟁들의 정당성을 ‘압제자의 부정당성’에서 찾는다. 곧 한 국가나 지배자가 지나치게 탐욕적이거나 공격적일 때 이를 제어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마치 한 가정의 가장(家長)이 드는 채찍에 해당하기에 그 정당성을 가진다.
또한 어거스틴은 개인적인 복수가 아니라 국가의 안전을 위한 황제의 명령에 의해서 수행되는 전쟁은 사실상 정당하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비록 역사의 정황이 울적하다 할지라도 이 사악한 세상에서 성도가 근심하는 것은 선(善)이다. 그럼으로써 성도는 흔들리지 않고 끝이 없는 하늘의 평화를 더 열렬히 추구하여, 어거스틴은 끊임없이 평화 예찬을 노래한다.
“평화 예찬은 아무리 노래해도 부족하지 않다.
평화는 하나님의 도성이 지향하는 목적이기에 우주적으로 사랑받는다. 요동하는 전쟁의 바로 그 목적은 마침내 평화를 얻기 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전쟁은 영화와 평화로 가는 다리(bridges)이다”(THE CITY OF GOD, XIX. 12).
  어거스틴에 따르면, 폭력이 가져다주는 평화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지구상에 일시적인 평화를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과 지상의 평화가 연동되어 있다고 선언한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하나님의 도성과 지상의 도성이 서로 얽혀 있는 한,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목적인 평화에 근접하기 위해 지상의 바벨론의 평화를 추구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일시적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도성의 영원한 평화를 끈기 있게 기다린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하나님의 도성은 믿음으로 그리고 온 세계와 하나님과 함께 하는 평화의 비전속에 있다.  
  결국 정당한 전쟁론의 본질적 구형(構形)은 이렇게 정리된다.
첫째, 전쟁의 궁극적 목적은 평화의 달성에 있다.
둘째, 정당한 전쟁은 악한 일에 대한 징벌을 목적으로 하는 전쟁이다(Just wars are usually defined as those that avenge injuries"(Letters, CXXXVIII, 9-15)    
셋째, 신약에 나타난 평화주의적 표현이 결코 구약의 성전(聖戰)이나 징벌 전쟁과 상치되는 것은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다.
넷째, 지상에서 평화 유지 기능을 담당하는 국가와 그리스도교의 관계는 배타적이 아니라 협력적인 관계이다.
다섯째, 전쟁의 불가피성은 인정되나, 모든 전쟁이 가(可)한 것은 아니다.
여섯째, 전쟁은 하나님의 창안물이 아니다. 도리어 전쟁의 궁극적 책임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은 ‘여러 악들’에 있다.  
일곱째, 실질적인 전쟁 결정권자는 국가의 원수(왕)에게 있다.
여덟째, 비록 법적으로는 정당할지라도 우리는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만큼 자신의 목숨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
아홉째, 정당한 전쟁론의 구형은 하나님의 도성과 지상의 평화의 연동성에 있다.


❚ 영적 도전
  누구나 평화를 갈망한다. 하지만 지상 도성에서의 전쟁아 불가피한 현실인 경우가 있다. 어떠한 경우의 전쟁이든지 그 전쟁은 그 자체로 불행한 사태이다. 그렇기에 성경은 ‘자유와 복지, 그리고 평화를 수호하는 목적이 이끄는 정당한 전쟁’을 허용했다.
  어거스틴 또한 단순히 국가 방위나 분쟁 해결 수단의 유용성 차원에서 정당한 전쟁을 판단하지 않았다. 도리어 어거스틴은 정당한 전쟁을 궁극적 하나님 나라의 평화 달성을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재평가함으로써 평화주의의 현실적 한계를 넘어선다.    이런 맥락에서 가나안 북방 족속의 침공에 대한 아브라함의 전쟁은 지상의 도성에서 현실적으로 치루는 전쟁의 윤리성과 한계성을 넘어 하나님의 도성의 항구적 평화를 이루고자하는 적극적인 신앙의 표출이요 인류애를 바탕으로 하는 인도주의의 실천이자 정당한 전쟁(의로운 전쟁)이었다.  
<2021. 2. 23(화) 10: 48, 목양실에서 / 2. 28(주일)오후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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