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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상과의 대화(9) -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조회수 : 207, 2021-04-14 10:20:30
관리자
위대한 사상과의 대화(Dialogue With the Great Thoughts / 9)

창세기 18: 16
아브라함을 생각하라(8)-아브라함의 중보기도

❚ “4월에는 꿈을 꾸자” / 김소엽
      4월에는 꿈을 꾸자
      멍든 가슴 부여안고
      고운 꿈을 꾸자

      버들강아지도 눈비비고 일어나서
      새 봄을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들풀도 부스스 일어나
      푸르른 꿈을 꾸고
      마른 나무도 기지개 켜고 일어나
      밝은 햇살 눈부신 꿈을 꾸고
      시냇물도 얼음장 뚫고
      제 갈길 재촉하며 앞장서고
      뒤에서 밀어주며 대양으로 가지 않느냐  

      4월은 아파도 다시 일어서야한다
      마른 가지마다 4월의 함성 맺혀
      진달래꽃은 피고
      백목련은 서럽게 지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꿈꿔야 산다
      멀리 가을은 생각지 말자
      아직 피어야 할 꽃들이 많아
      4월의 꽃은
      꽃은 아직도 너무 아프다

      그래도 4월에는 꿈을 꾸자
      멍든 가슴 부여안고
      아름다운 꿈을 꾸자

❚ 중보기도
✒ 기도의 종류
  믿음의 기도     The prayer of faith
  찬양 기도              The prayer of praise
  합심 기도              The prayer of agreement(corporate prayer)
  간구하는 기도   The prayer of request(supplication prayer)
  회개기도              Repenting prayer
  감사기도              The prayer of thanksgiving
  성찬 기도              The prayer of Eucharistic
  새벽기도              Early morning prayer
  관상기도              Contemplative prayer
  공중기도              The prayer of common(public prayer)
  중보기도              The prayer of intercession

✒ 중보기도인가 아니면 도고기도인가?  
  성도들이 흔히 사용하는 ‘중보기도’(仲保祈禱)는 ‘가운데 중(中), 지키다 보(保), 빌 기(祈), 빌 도(禱)’의 조합으로서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를 의미한다.
  ‘중보’의 사전적 의미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일이 성사되도록 주선하는 사람”이다. 중보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중보기도’라는 용어 대신 ‘도고기도’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이 있다. 도고기도(禱告祈禱)는 ‘빌 도(禱), 알릴 고(告), 빌 기(祈), 빌 도(禱)’로 구성된다.
  ‘중보기도’보다는 ‘도고기도’라고 해야 한다는 분들은 ‘중보’라는 단어가 신학적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적용되어야 할 말이므로 ‘중보기도’ 역시 그리스도께만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구원 중보자이시기 때문에 ‘중보’라는 용어를 예수 그리스도께만 사용하고 달리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롬 8: 34)로서 지금도 중보사역을 계속하시는데, 그리스도의 간구를 ‘중보기도’라고 하기 때문에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을 동일한 ‘중보기도’로 표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신학적으로나 교회의 전통적 이해 측면에서 볼 때, 우리를 위해 아버지께 간구하는 중보기도는 성자 하나님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도 하신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 26).
비록 성령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과 같은 중보자는 아니지만 성령 또한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하신다.
성경의 이런 측면을 이해한다면, 성자 예수님의 중보기도든 성령 하나님의 중보기도든 모두 하나님의 뜻과 부합된 기도일 수밖에 없다.
  우리 크리스천 성도들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수 있고, 아니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 즉 사랑의 빚진 자요,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해야할 사람, 즉 사랑의 배달부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 44).
미움의 당사자인 원수를 사랑하는 비결은 기도, 즉 중보기도밖에 없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원수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셨음을 기억하자.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 34).
이것이 예수님의 전형적인 원수 사랑의 중보기도이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친히 보여주셨다. 그리고 승천하신 후에 예수님은 사랑하시는 자신의 지체를 위해 중보기도 하신다. 그리스도의 중보기도는 지금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일으키는 동력이다.
  결국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처럼 원수를 위해, 그리고 다른 지체를 위해 간구함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중보기도다.

❚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 소돔과 고모라 상황의 심각성
  <창 18: 20-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소돔(Sodom)과 고모라(Gomorrah)는 ‘아드마, 스보임, 소알’과 더불어 사해(死海)남단 싯딤 골짜기에 있던 다섯 도시 중 두 도시이다(14: 2-3). 이곳 사람들은 극도로 타락하였기 때문에 인류 역사에 있어 ‘죄악의 도시’를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성경에 따르면,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에 대한 원성(怨聲)과 고소(告訴, complaint) 소리가 높았다. 이는 “억울한 피는 땅 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하늘을 향해 호소(呼訴)한다”는(창 4: 10) 고대인의 사상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서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심히 무겁고 큰 것이었음을 상징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며 소돔과 고모라로 직접 감찰을 내려가겠다고 그 뜻을 피력한다.
고지대인 헤브론의 아브라함을 방문하신 주의 천사 일행이 요르단 평지인 소돔과 고모라 쪽으로 가서 상황을 살피겠노라는 뜻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이점을 감안하여 생각해보면,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는 하나님의 의지 표현은 그분께서 타락상을 직접 보고서 확인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주시겠다는 은총의 유예를 시사한다. 고대 사본에는 “만일 회개하기만 한다면 내가 그들을 벌하기 않겠다”는 말이 첨가되어 있다.
실제 아브라함이 소돔 고모라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였던 것처럼 소돔과 고모라 가운데 열 명 만이라도 회개하였더라면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당하지 않았을 개연성이 크다.

✚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자세
  <창세기 18: 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approached)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가까이 나아가’(שׁגנ, 나가쉬)는 ‘어떠한 목적을 위해 접근하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경배하다, 함께 눕다’는 뜻이 파생되었다.
따라서 ‘가까이 나아가’는 아브라함이 위치뿐 아니라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영적으로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음을 가리킨다.


횟수
간청
응답
성구
1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하시나이까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인이 있을지라도 그 오십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인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26)
18: 23-26
2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거하나이다 오십 의인 중에 오인이 부족할 것이면 그 오인 부족함을 인하여 온 성을 멸하시리이까
내가 거기서 사십 오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18: 27-28
3
거기서 사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니이까
사십 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 하리라
18: 29
4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내가 거기서 삼십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18: 30
5
내가 감히 주께 서하나이다 거기서 이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내가 이십 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18: 31
6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내가 십 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18: 32
✚ 중보기도 내용

✚ 아브라함의 중보기도가 주는 교훈
  1.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이웃 사람들의 비참한 일들을 목격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우리 자신이 그러한 일들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자신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더욱이 온갖 죄악 속에서 생명의 길을 찾지 못하고 멸망으로 떨어져가는 이웃들을 볼 때. 너무도 안타까운 나머지 오히려 우리는 눈을 감아버리거나 의도적으로 회 피해버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일까?
하나님을 믿는 우리로서 할 일이 아무것도 없을까?
있다. 우리가 중보자가 되어 하나님께 그 안타까운 사정을 아뢰는 것이다. 이것을 ‘중보의 기도’라고 한다.
  믿음의 조상들은 중보 역할을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참으로 안타까워했다. 더욱이 의인들이 불의한 자들과 함께 멸망한다는 사실에 그의 마음은 불탔다. 해서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에 10명의 의인이라도 있다면 그들을 봐서라도 소돔성을 구원해 달라고 애처롭게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렸다.
결국 롯과 그의 두 딸 세 사람만이 구원을 받았는데, 신앙적 영적 견지에서 그 세 사람도 아브라함의 간절한 중보의 기도가 있었기에 구원을 받았다.
  출애굽기 32: 30-35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숭배하다가 멸망하게 되었을 때 그들이 구원받은 것은 모세의 중보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출 32: 30-35). 이외에도 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중보 기도했다.
  우리가 구원 얻는 것도 예수님의 중보 때문이다.
정녕 우리 인생 모두는 우리의 죄악 때문에 심판받아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가 되어 주셨다. 그래서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았던 죄악의 담을 허물어 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중보의 사랑으로 하나님과 화해의 길이 열렸다. 그로 말미암아 오늘날 우리가 영생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딤전 2: 5).
  예수님은 오늘날도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 중보의 기도를 하신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 34).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른 사람의 중보자가 되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보를 통하여 구원을 얻었기 때문이다.
많은 믿음의 선진들도 믿음을 우리에게 전해주기 위하여 중보의 역할을 행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신앙의 길에서 뒤처진 사람들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에 헌신하자.
성도 각자의 중보기도를 통하여 그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임하기를 간구하자. 하나님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선하게 응답하실 것이다.
증보의 기도가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대단하다.
  2.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생활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들의 기도와 하나님의 자비는 한 우물에 매달려 있는 두 개의 두레박과 같다. 하나가 올라가면 다른 하나는 반드시 내려가기 때문이다”
                                   - 마크 홉킨스(Mark Hopkins)
“기도는 세상을 움직이는 손을 또한 움직인다”
                                  -존 월리스(John A. Wallace)
그렇다. 기도는 단지 넋두리나 종교적 형식이 아니다.
기도는 전능하신 여호와의 신실하심을 바라보고 믿고 도움을 구하는 실재이다.  
  아브라함은 주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기도를 드렸다(분명한 대상).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용서와 구원을 간구했다(분명한 목적).
아브라함은 응답해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끈기 있게 간구했다.
아브라함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내 주’로 칭하면서 하나님 주권을 인정했다.
아브라함은 “내 주여 노하지 마옵소서”라고 간구하여 하나님의 자비에 의지해서 기도드린다. 특히 아브라함은 한님의 자비와 긍휼에 더욱 의지한 간절한 호소를 드린다. 마치 황금 사슬이 하나하나 연결되듯 “의인 오십, 사십오인, 사십, 삼십, 이십, 십 인”으로 진행되는 이 간절하고 끈질긴 아브라함의 기도 속에서 ‘이번만 더’(just one more)라는 간구를 드린다. 이는 소돔 성에 대한 아브라함의 애타는 사랑과 그의 간청을 끝까지 받아 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를 신뢰하는 믿음을 반영한다.
  3.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은 아브라함의 믿음은 기도가 포함된 믿음의 영성이 주축을 이룬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 가운데서 발견된다.
​아브라함은 벧엘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창 13: 1-4).
아브람에게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이 부여될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창 17: 1-5).
아브라함은 소돔성의 멸망 직전에 중보기도로 간절히 하나님과 대화하며 주께 소원을 아뢴다(창 18: 22-33).
​이러한 아브라함의 간절한 중보기도는 그가 기도의 사람이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축복고하 응답을 받는 영적 그리스도인임을 함축한다.
  4. 의인 열 명이 없어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의 비극이 우리들의 현실이 될까 심히 두렵다. 만일 지금 하나님께서 의인 열 명을 찾으신다면 정녕 우리들이 그 앞에 이름이 불려 설 수 있을지 두렵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립보서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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