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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상과의 대화(10) - 이삭 출산의 은혜 조회수 : 60, 2021-06-30 14:41:18
관리자

위대한 사상과의 대화(Dialogue With the Great Thoughts / 10)

창세기 21: 1-7
아브라함을 생각하라(9)-이삭 출산의 은혜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
▷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심(창 12: 2)
▷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하심(창 12: 2)
▷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심(창 12: 2)
▷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를 복주고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창 12: 3)
▷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인해 복을 얻음(창 12: 3)
▷ 후손을 주심(창 15: 3-5; 21: 1-7)
▷ 땅의 기업을 약속하심(창 15: 7-21)
▷ 장수와 평안의 죽음의 축복(창 15: 15)
▷ 물질적 축복(창 24: 35)

▮ 창세기 21: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Now the LORD was gracious to Sarah as he said)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일전에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네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으리라”는 주셨던 언약(17: 19-22; 18: 9-15)을 예고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예고하셨던 기간이 이르자(2절) 그 언약을 말씀대로 성취시키신다.
  하나님께서 “사라를 돌보셨다(권고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잊지 않고 사라를 돌보셨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and the LORD did for Sarah what he had promised)
사라가 잉태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특별히 배후에서 역사하신 것을 가리킨다. 실로 생명의 잉태와 죽음 등과 같은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씀한다.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 지어낸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This is what the LORD say-he who made you, who formed you in the womb 이사야 44: 2).  
특히 90세에 이르는 사라가 단산(斷産)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 같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1: 11-12>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 창세기 21: 2
“사라가 임신하고(Sarah became pregnant)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and bore a son to Abraham in his old age, at the very time God had promised him)”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이삭의 출생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리라고 말씀하셨던 첫 계시(15: 4)로부터 13년이 지난 시점에 이르러서 약속이 성취되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아브라함 나이 100세가 되어 그의 몸이 죽은 것 같은 때(롬 4:19)를 기다림으로써 이삭 탄생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히 11: 11-12)
또한 아브라함에게 준 자녀 언약의 일부분인 ‘이스마엘’(16: 10-12; 17: 20)이 독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되도록 기다리시기 위함이다.
<창세기 21: 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창세기 17: 1-8에서 아브라함 가정에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약속)은 무려 13년 만에 이루어진다(창 21: 2).
이 당시 아브라함은 100세, 사라는 90세였다.
아브라함 부부에게 있어 인간적 육체적으로 이미 소망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불가능한 가능성(Impossible Possibility)으로 된 일임을 깨닫게 한다.
<로마서 4: 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로마서 4: 20-21>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 창세기 12: 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 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이삭’, 이 이름은 창세기 17: 19, 창 17: 21에 이삭이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지어 주신 이름이다.
히브리인들은 이름이 그의 성격, 용모, 특징, 운명을 반영한다고 여김. ‘웃다’는 이삭의 이름은 출생 전 수태고지 시 아브라함과 사라가 ‘웃었던’ 사건에 기인한다.
동시에 이삭이라는 이름은 그가 오랫동안 고대하던 아들로서 온 가족들의 기쁨 중 태어난 것을 보여 준다.
실로 이삭은 단순한 한 가정의 계승자일 뿐 아니라 먼 훗날 모든 민족에게까지 미칠 언약(12: 2-3)의 상속자였다. 따라서 이삭의 탄생은 구속사적인 의미에서도 크게 웃을 큰 경사(慶事)가 아닐 수 없다.


▮ 아브라함과 이삭은 “그 아들 이삭이 난지 팔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할례를 행하였다”(창 21: 4).
당시 할례는 비단 히브리인 뿐 아니라 애굽, 에디오피아 같은 고대 이방 민족들도 시행하던 의식이었다. 그런데 이방인들의 할례는 단지 어떤 고통과 질병 따위를 제거하려는 미신적인 성격을 가졌거나 혹은 출산 능력을 증가시키고자 하는 생식 수단으로서의 의미만을 지녔다.  히브리인들의 할례는 언약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근거한 철저히 종교적이고도 영적인 의미를 지녔다는 데 그 차이가 있다.

▮ 성경은 사라의 행복을 숨기지 않는다.
<창세기 21: 5-7>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세라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첫째, 사라의 기쁨은 그녀의 노년에 아들을 얻은 기쁨이라 행복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태어날 때 백세라”(창 21: 5)
둘째, 사라의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기쁨임을 고백한다.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창 21: 6).
이는 사라의 전적 고백이다.
자기에게 전에 아들을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이 비로소 성취되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사라는 단지 그녀에게 자식이 주어진 것을 넘어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무한 감사 고백을 드렸다.
우리 또한 기쁨을 인간적인 것에만 두지 말자.
변하지 않는 기쁨, 영원한 기쁨은 바로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다.  
셋째, 이삭을 얻은 사라는 사람들과 기쁨을 나눔으로 더욱 행복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다”(창세기 21: 8).
이 기쁨은 단지 아브라함과 사라의 기쁨을 넘어 모든 사람의 기쁨이다.
우리는 얼마나 기쁨을 나누는가?
사라와 아브라함은 그만큼 고대하고 대망하던 자식이었기에 모든 사람과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  

▮ 자녀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자녀가 없는 곳에는 천국도 없다” -스윈번(1837~1909, 영국 시인)
“하나님께는 손자는 없고 자녀들만 있다.”-스탠리 존스
“가장 좋은 냄새는 빵 냄새이고, 가장 좋은 맛은 소금 맛이며, 가장 좋은 사랑은 자식에의 사랑이다.”-스페인 속담
“자녀를 고귀하게 하는 것은 혈통이 아니라 정신이다.”-독일 격언
<자녀 교육 십계 ? 유의웅 󰡔왼손을 위한 콘체르토󰡕>
  민족(民族)의 희망이며 나라의 보배인 어린이들을 바로 키우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우리 가정의 아이들과 우리 동네의 어린이들을 생각하면서 자녀 교육 십계를 소개한다.
  “제 1은 아이를 너무 떠밀지 말지니 빨리 자라는 것이 잘 키우는 것이 아니니라.”
요즘 아이들은 보고 듣는 것이 너무 많아 성장 과속이다. 아이가 어른스러우면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
다우닝(G. Dowing) 박사는 “빨리빨리 세상에서 떠밀고 경쟁한 가운데서 자란 현대 아동들은 욕심스러워지고 그들의 심성이 타락 한다”고 경고한다.
  “제 2는 아이를 얕보지 말지니 그들의 세계는 부모의 관찰보다 훨씬 깊으니라.”
아이들의 생각은 부모의 관찰보다 깊을 수 있다. 아기 취급하지 말고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고집스럽고 말을 안 들어도 아이들의 마음은 관찰보다 부드럽다. 더 굳어지지 않도록 사랑의 물을 주어야 한다.   “제 3은 감정을 퍼붓지 말지니 어린이는 어른의 감정을 쏟는 휴지통이 아니니라.”
아이 지도는 자기감정의 영향을 떠나 원칙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교육은 언제나 부모보다는 아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제 4는 아이에게 이기려고 하지 말지니 가정은 전쟁터가 아니니라.”
자녀 교육은 믿음과 사랑과 이해의 관계이지 이기고지는 싸움이 아니다.
  “제 5는 칭찬을 아끼지 말지니 이보다 나은 보약이 없느니라.”
칭찬은 안심을 주고, 격려가 되고, 마음을 열게 한다. 칭찬은 잘한 것에 대한 확인이 됨으로써 다음 기회를 위한 자극이 된다. 그러나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칭찬이나 과장된 칭찬은 역효과를 낳는다.
  “제 6은 아이를 나의 소유라 생각하지 말지니 감사함으로 대할지니라.”
아이는 하나님으로부터 맡겨진 생명이다. 부모도 교사도 이 원칙을 명심해야 한다. 나에게 맡겨 주심을 감사하고 잘 키워 다시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사명감으로 남자 아이거나 여자 아이거나 심신장애 아동일지라도 차별 없이 대해야 한다.
  “제 7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지 말지니 부모가 최상의 교재니라.”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비평이 아니고 모델이다. 훈계보다 모범을 보이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말보다 몇 배나 영향을 주는 것은 부모 자신의 언행이다.
  “제 8은 아이의 현재만을 보지 말지니 그 가능성과 미래상을 볼지니라.”
아침이 낮을 예언하듯 어린이는 어른을 예언하며 작은 씨가 큰 나무를 기약하듯 어린이는 미래의 세계를 기약한다. 그러므로 아이에게서 볼 것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며, 현실이 아니라 꿈과 장래이다.
  “제 9는 아이를 일반화하여 보지 말지니 한 명 한 명은 특별하니라.”
어느 아이든지 개성과 특징과 소질이 있다. 이 차이점을 발달시켜 주는 것이 교육이다.
  “제 10은 강요도 아부도 삼갈지니 진실을 보일지니라.”
책망도, 훈계도, 칭찬도, 진실의 발로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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