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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상과의 대화(11) - 여호와이레 조회수 : 69, 2021-06-30 14:42:07
관리자
위대한 사상과의 대화(Dialogue With the Great Thoughts / 11)

창세기 21: 1-7
아브라함을 생각하라(10)-여호와이레

▮ 자녀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자녀가 없는 곳에는 천국도 없다”-스윈번(1837~1909, 영국 시인)
“하나님께는 손자는 없고 자녀들만 있다.”-스탠리 존스
“가장 좋은 냄새는 빵 냄새이고, 가장 좋은 맛은 소금 맛이며, 가장 좋은 사랑은 자식에의 사랑이다.”-스페인 속담
“자녀를 고귀하게 하는 것은 혈통이 아니라 정신이다.”-독일 격언

▮ 사랑하는 자녀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민족(民族)의 희망이며 나라의 보배인 어린이들을 바로 키우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우리들 가정의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자녀 교육 십계” 유의웅, 󰡔왼손을 위한 콘체르토󰡕 (서울: 예영커뮤니케이션, 1995).  
를 소개한다.
  “제1은 아이를 너무 떠밀지 말지니 빨리 자라는 것이 잘 키우는 것이 아니니라.”
요즘 아이들은 보고 듣는 것이 너무 많아 성장 과속이다. 아이가 어른스러우면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
다우닝(G. Dowing) 박사는 “빨리빨리 세상에서 떠밀고 경쟁한 가운데서 자란 현대 아동들은 욕심스러워지고 그들의 심성이 타락 한다”고 경고한다.
  “제2는 아이를 얕보지 말지니 그들의 세계는 부모의 관찰보다 훨씬 깊으니라.”
아이들의 생각은 부모의 관찰보다 깊을 수 있다. 아기 취급하지 말고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고집스럽고 말을 안 들어도 아이들의 마음은 관찰보다 부드럽다. 더 굳어지지 않도록 사랑의 물을 주어야 한다.   “제3은 감정을 퍼붓지 말지니 어린이는 어른의 감정을 쏟는 휴지통이 아니니라.”
아이 지도는 자기감정의 영향을 떠나 원칙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교육은 언제나 부모보다는 아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제4는 아이에게 이기려고 하지 말지니 가정은 전쟁터가 아니니라.”
자녀 교육은 믿음과 사랑과 이해의 관계이지 이기고지는 싸움이 아니다.
  “제5는 칭찬을 아끼지 말지니 이보다 나은 보약이 없느니라.”
칭찬은 안심을 주고, 격려가 되고, 마음을 열게 한다. 칭찬은 잘한 것에 대한 확인이 됨으로써 다음 기회를 위한 자극이 된다. 그러나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칭찬이나 과장된 칭찬은 역효과를 낳는다.
  “제6은 아이를 나의 소유라 생각하지 말지니 감사함으로 대할지니라.”
아이는 하나님으로부터 맡겨진 생명이다. 부모도 교사도 이 원칙을 명심해야 한다. 나에게 맡겨 주심을 감사하고 잘 키워 다시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사명감으로 남자 아이거나 여자 아이거나 심신장애 아동일지라도 차별 없이 대해야 한다.
  “제7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지 말지니 부모가 최상의 교재니라.”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비평이 아니고 모델이다. 훈계보다 모범을 보이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말보다 몇 배나 영향을 주는 것은 부모 자신의 언행이다.
  “제8은 아이의 현재만을 보지 말지니 그 가능성과 미래상을 볼지니라.”
아침이 낮을 예언하듯 어린이는 어른을 예언하며 작은 씨가 큰 나무를 기약하듯 어린이는 미래의 세계를 기약한다. 그러므로 아이에게서 볼 것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며, 현실이 아니라 꿈과 장래이다.
  “제9는 아이를 일반화하여 보지 말지니 한 명 한 명은 특별하니라.”
어느 아이든지 개성과 특징과 소질이 있다. 이 차이점을 발달시켜 주는 것이 교육이다.
  “제10은 강요도 아부도 삼갈지니 진실을 보일지니라.”
책망도, 훈계도, 칭찬도, 진실의 발로가 되어야 합니다.
▮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에 실려 있는 이삭의 번제 이야기  
1. 아브라함에게 닥친 시험(창 22: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God tested Abraham)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노년에 낳은 이삭을 끔찍이 사랑했다. 이삭은 이삭대로 행실이 착하고 보모를 잘 공경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두텁게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아브라함은 그런 이삭을 보면서 이렇게 훌륭한 아들을 두었으니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흐뭇해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축복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대한 아브라함의 신실성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보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지금까지 그에게 베푸셨던 은혜들-그를 미워하는 대적들보다 아브라함을 더 강하게 만들어 주셨던 것과, 현재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과 더불어 더 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게 하신 일 등-을 상기시키면서 아브라함 자신이 손수 아들 이삭을 잡아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바칠 것을 요구하셨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22: 2)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까지 데리고 가서 거기서 단을 쌓고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더 구체적으로 명령하였다.
만일 아브라함이 진심으로 아들 이삭의 생명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더 소중히 생각한다면, 이것보다 하나님을 향한 그의 신앙을 명백히 보여 드리는 다른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잠언 4: 6-9>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그 명철을 얻을지니
그(지혜, 하나님)를 높이라(Esteem Him, 그를 존경하라)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She will set a garland of grace on your head)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and present you with a crown of splendor)”

2.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준비한 아브라함
  모든 생물은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로 살아가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에 맞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려는 자신의 의사를 아내 사라는 물론, 그의 하인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그 명령을 순종하는 데 큰 난관에 봉착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삭과 두 하인만을 데리고 제물을 바치는 데 필요한 모든 도구들을 나귀에 싣고 모리아 산으로 향했다.
둘째 날까지는 두 하인들과 함께 동행 했으나, 사흘째 되는 날 모리아산이 시야에 들어오자, 아브라함은 두 종을 평지에 남겨두고 이삭만을 데리고 훗날 다윗 왕이 성전을 세웠던 그 산으로 올라갔다.
“아브라함은 번제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동행”했다(창 22: 6).
그 때,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물었다.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7)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답한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God himself will provide the lamb for the burnt offering, my son)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창 22: 8).
  이렇게 아브라함과 이삭은 제물로 드릴 짐승을 제외하고는 그 밖에 번제에 필요한 도구들은 모두 가지고 갔다.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에 따르면, 그 때 이미 나이 25세였던 이삭은 제단을 쌓으면서, 아브라함에게 희생제물이 없으니 무엇으로 제사를 드리느냐고 묻자 아브라함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없는 자들에게 풍성히 주실 수도 있고 있는 자들의 것을 모두 취할 수도 있는 분이니, 우리가 그 분만을 전적으로 의지한다면 하나님께서 이 제사에 임재하시고 이 제사를 기뻐 받으시기를 원하신다면 그 분이 친히 제물을 준비하실 것이다.”<유대고대사 13장>
  
3.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들려 준 고백
  제단이 완성되고 마침내 그 제단 위에 나무를 쌓아올린 뒤 제사 드릴 모든 준비를 끝내자,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나는 너의 출생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수많은 날을 기도로 보냈다.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너를 기르느라 해 보지 않은 고생이 없었고, 네가 별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 보다 더 행복한 날은 없다고 생각했단다.
내가 죽으면 나의 모든 통치권을 네게 넘겨 주려고 결심했었다.
그러나 내가 네 아버지가 된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으니, 이제 그분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부득이 너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 같으니 넓은 마음으로 이 아비를 용서해 다오. 이제는 나의 후원자요, 나의 보호자이며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그 은혜에 대한 보답을 요구하시는 하나님께 너를 바쳐야 하겠구나.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너는 세상의 다른 사람들이 죽는 것과 같이 평범하게 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네 아비의 손에 의해 하나님께로 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라.
나는 하나님께서 보통 사람들처럼 질병이나 전쟁과 같은 혹독한 방법으로 너의 생명을 앗아가지 않으시고 너의 영혼을 이처럼 기도와 거룩한 예물로 받으시고 당신의 곁에 두셔서 이 아비의 노년에 아비의 원조자와 후원자가 되게 하시리라 굳게 믿고 있단다.
하나님께서 이 아비 대신 너의 영혼을 위로해 줄 줄로 믿는다.”

4. 이삭의 구출과 하나님의 은혜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는 속담도 있듯이 이삭은 마음이 온순하고 성품이 관대하여 “만일 제가 하나님의 뜻과 아버지의 결정을 무시하고 두 분의 선하신 뜻에 따르기를 거절해 버릴 몸이라면, 처음부터 이 세상에 태어날 가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이 일을 비록 아버지 혼자 결정했다 할지라도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식된 도리를 다한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흔쾌히 대답했다. 그리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잠시 후면 자신의 몸에 제물로 바쳐질 그 제단 위로 올라갔다. 만일 그때 하나님께서 막지 않으셨더라면, 이삭은 실제 제물로 바쳐졌을 것이다.
  하나님은 다급한 음성으로 아브라함의 이름을 크게 부르셔서 그가 아들을 잡는 것을 멈추게 하셨다.
잠시 후 하나님께서는 입을 열어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내가 네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한 것은 인간의 피에 대한 굶주림 때문도 아니요, 아비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빼앗으려 함도 아니라, 단지 아브라함 네가 이런 명령에도 순종할 수 있는지 네 마음을 시험해 보려는 데 있었느니라.
이제 나는 나에 대한 네 신뢰와 충성심을 확인하였으니, 이제부터는 너에게 놀라운 축복을 넘치도록 부어줄 것이니라.
뿐만 아니라 네 아들 이삭은 이 땅에서 장수하며 그의 후손을 통하여 자손이 번창하여 민족 위에 민족을 이룰 것이며,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열국을 다스려 그 이름을 후대까지 영원히 남길 후손을 허락하겠노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수양 한 마리를 그들의 눈에 띄게 하셨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예상치도 못했던 축복의 약속을 받고 너무 기뻐서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 부둥켜안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제물로 제사를 드린 아브라함과 이삭은 사라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가호 아래 복을 누리며 살았다.

▮ 평가: 모리아산과 여호와이레
  <모리아 산에 대한 역사적 이해>
1. 멜기세덱이 왕으로 통치했던 살렘이다(창 14: 18, 히 7: 1).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쳤던 ‘여호와이레’이다(창 22: 2, 14).
3. 사사(士師) 시대에는 ‘밟힌 곳, 타작마당’이란 뜻의 ‘여부스 땅’(삿 19: 10)으로 유다 지파가 한때 정복하여 베냐민 지파에게 주었으나 베냐민 자손은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다(수 18: 28, 삿 1: 8, 21).
4. 다윗이 통일왕국의 왕이 되어 여부스 땅을 정복하고 다윗 성으로 개명하였다(삼하 5: 6-10).
5. 다윗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회개하고 번제를 드린 후 염병이 그친 곳의 여부스 사람 오르난(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이다(삼하 24: 16, 대상 21: 15).
6. 솔로몬이 다윗이 정한 곳에 성전을 건축한 후 ‘시온’(요새, 성채, 안전한 곳)으로 불렀다(대하 3: 1, 5: 2, 왕상 8: 1).
7.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긴 후 예루살렘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어 불리게 되었다. ‘예루’는 ‘여호와이레’, ‘살렘’은 ‘평강’을 뜻하므로 ‘여호와께서 준비하신 평강의 성읍’이며, ‘우리 마음 가운데 말씀이 준비되었느냐’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8. 예루살렘은 종말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지는 ‘새 예루살렘’을 가리킨다(히 12: 22).


  <평강의 왕 멜기세덱을 만난 아브라함(창 14: 18-20, 히 7: 1-3)>
1. 아브라함은 평강의 왕 멜기세덱을 만나 십일조를 드렸다(창 14: 20). 아브라함 84세인 주전 2082년, 아브라함이 318명을 데리고 싯딤 전투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 멜기세덱을 만났다. 그는 살렘 왕, 평강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히 7: 1-3). 멜기세덱은 메시아의 삼중직(三重職) 가운데 ‘제사장’과 ‘왕’의 사역을 보여준다(히 5: 6, 6: 20, 사 9: 6).
2.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아브라함을 축복하였다. 이는 예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예표(豫表) 하는 사건으로, 떡과 포도주는 예수님이 인류를 위하여 희생 제물로 드리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암시하였다(요 6: 48-58).
3. ‘산 자’인 멜기세덱이 ‘죽은 자’인 아브라함을 떡과 포도주로 축복한 이유는 무엇인가? 산 자인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산 자의 조상,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다(히 7: 8, 마 22: 31-32, 눅 20: 37-38). 산 자의 맥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원인이, 산 자의 멜기세덱이 축복한 데 있다. 멜기세덱의 축복은 예수님의 피와 살(포도주와 떡)에 의한 부활과 생령의 축복이다.
4. 여기 ‘샤웨 골짜기’는 ‘왕곡(王谷)’, 곧 모세 당시에는 ‘왕의 골짜기’로 불렸는데 살렘 왕 멜기세덱의 왕궁이 있었던 부근으로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이 만났던 장소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아브라함에게 지시하신 모리아 땅의 한 산(창 22: 2)>
1. ‘모리아’는 ‘선택, 작정’이란 뜻의 히브리어 ‘모리에’와 여호와의 축약형인 ‘야’가 합성되어 ‘여호와께서 친히 선별해 주셨다’, 또는 ‘여호와께서 보이심, 계시’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2. 지시하는 ‘한 산’은 원어에는 정관사 ‘하’가 붙어 직역하면 “그 산들 가운데 하나(또는 첫째)의 산”이란 뜻이 된다. 그러나 이후 본문에서 아브라함에게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이 지시하셨는지 나타나지 않는다. 만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알려진 멜기세덱과의 만남을 연관 지어 생각해 본다면 ‘샤웨 골짜기 곧 왕곡’에서 올라가면 모리아 땅이고 거기 첫째 산봉우리로 본다면 현존하는 예루살렘의 성전산(聖殿山)이 된다. 그렇다면 그곳은 아브라함과 멜기세덱의 만남에서 비롯된 장소요, 이미 아브라함이 알고 있는 장소였을지 모른다.
생령인 아담(창 2:7)이 타락하여 죽은 자가 되었으나, 다시 20대(代) 만에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남으로 산 자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창 22: 2, 14).
3.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의 신앙(떡과 포도주, 곧 말씀)을 전수받은 것이다(창 14: 19, 22). 기도는 신앙고백을 의미하는 것으로 기도의 일치는 신앙의 일치이다. ‘천지의 주재(主宰)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고 아브라함이 고백한 것은 멜기세덱이 제사장으로서 섬기는 그 하나님을 섬긴다는 자기 신앙고백이다.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班次)를 좇아오신 흔적을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라는 표현에서도 찾을 수 있다(마 11: 25).
4.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횃불 언약을 아브라함과 맺으셨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부른 호칭을 통해, 그의 신앙이 점점 성장해 갔음을 알 수 있다.
- 메소포타미아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영광의 하나님(행 7: 2)
- 말씀(언약) 하시는 하나님(창 12: 1-4, 13: 15-18)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창 14: 18)
-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창 14: 19, 22)
- 방패와 상급이 되시는 하나님(창 15: 1)
- 전능의 하나님(창 17: 1)
- 심판과 긍휼의 하나님(창 18: 23)
- 영생하시는 하나님(창 21: 33)
5.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믿음의 시험이 온다.
복은 어떻게 믿고 어떻게 순종하는지 시험하신 후 주신다(창 22: 1, 신 8: 2, 대하 32: 31, 눅 2: 35).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시험을 통과하는 지름길이다. 아브라함은 ‘영생하시는 하나님’께서 언약의 후사로 주신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려도 다시 살리실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고 바친 것이다(히 11: 19).
6. 이때 아브라함과 이삭의 신앙도 하나가 되었다. 함께 산에서 내려온 아브라함은 브엘세바로 돌아왔고(창 22: 19), 이삭은 ‘브엘라헤로이’로 가서 머물렀다(창 24: 62). 곧 아브라함의 신앙이 순간적으로 이삭에게 전수되어 산 자의 하나님을 만났고, 이때부터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을 남방 부족들로부터 지키는 첨병이 되었다.
7. 아브라함의 믿음과 이삭의 순종, 다윗의 회개와 솔로몬의 순종이 터가 되어 약 1,000년(주전 2082년–959년=1123년) 만에 솔로몬 성전이 세워진 모리아의 한 산, 여호와이레는 산 자의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 전수의 산실이다.
8. 따라서 ‘모리아의 한 산’은 ‘여호와이레’가 되어 다윗의 ‘오르난(아라우나)의 타작마당’으로 이어지고 ‘시온성’, ‘예루살렘’이 되었다.

  <아브라함이 산 자로서 언약의 최종확증을 받은 여호와이레(창 22)>
1. 이때는 아브라함이 125-136세 사이, 이삭은 25-36세이며, 횃불 언약 41-52년째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사건은 이삭의 나이 37세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은 창세기 22장 사건 후, 23: 1에서 사라가 127세를 향수(享壽) 하고 죽었는데, 이때 이삭의 나이가 37세였기 때문이다.
2.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 제물이 되기까지 순종한 이삭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걸머지고 골고다 언덕에서 온 인류의 제물, 대속물(代贖物)로 순종하실 예표이다.
3. ‘여호와이레’라는 고백은 독자 이삭을 모리아의 한 산에서 드림으로 아브라함이 언약을 확증 받은 사건을 의미한다.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으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심과 같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확증된 것이다(롬 5: 8).
4.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한 아브라함의 믿음의 의가 하나님께로 인정받고(창 22: 12) 큰 복의 축복을 주셨다. 여호와이레의 축복은 큰 복의 축복이다(창 22: 17-18).
5.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 친구가 되었다(대하 20: 7, 사 41: 8, 약 2: 23).
6. 아브라함 믿음의 시작과 끝은 멜기세덱의 반차(대제사장, 평강의 왕, 사 9: 6, 히 7: 1-3)를 좇아 이루어진다. 아담의 자손 가운데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구속(救贖) 경륜은 종말에 나사로를 품에 안은 아브라함으로 끝이 난다.
아브라함의 믿음 위에 예수님께서 오셨던 것처럼, 세상 끝날 재림의 역사도 아브라함의 믿음의 결과요, 열매로 끝이 난다. 결국 아브라함과 똑같은 믿음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이요 회복과 구원의 모습이다(갈 3: 9). 아브라함 신앙의 푯대는 바로 멜기세덱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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