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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상과의 대화(13) - 흉년과 이삭의 우물 조회수 : 69, 2021-06-30 14:45:13
관리자
위대한 사상과의 대화(Dialogue With the Great Thoughts / 13)

창세기 26: 1-6, 12-15
이삭 이야기(2)-흉년과 이삭의 우물

❚ 흉년과 이삭의 순종 / 창세기 26: 1-6, 12-15
<그랄(Gerar)로 이동하는 이삭 / 창 26: 1>

▪ 흉년, 이삭의 그랄 이주
  (창세기 26: 1-11)
  창세기 25장에는 아브라함의 후처 및 첩의 후손들의 계보와 아브라함의 죽음, 야곱과 에서의 탄생 및 야곱의 장자권 획득 동의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구속사의 무대가 아브라함에서 다음 세대인 이삭과 야곱에게로 넘어간 사실이 나온다.
  창세기 26장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언약을 계승받은 이삭의 행적을 소개한다. 그중에서도 본문(창 26: 1-11)은 흉년으로 인해 이삭이 그랄로 이주하는 것과 그곳에서의 인간적 실수와 관련한 언급 한다.
<창세기 26: 1>“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는 인류역사상 아브라함 때에 처음으로 흉년이 있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브라함이 생전 처음으로 경험한 큰 흉년(대략 B. C. 2090년경으로 추정)을 의미한다.
이삭은 극심한 흉년으로 인해 오랫동안 거주했던 ‘브엘라해로이’(25: 11)를 떠나 블레셋 족속의 땅인 ‘그랄’로 이주한다(1).
아브라함 때 있었던 흉년 이후 약 1세기 뒤 이삭 때, 가나안 땅은 또  한번 대흉년이 들었다(대략 B. C. 1990년경으로 추정됨).
가나안 지역은 건조한 땅인데다가 큰 강이 없었으므로 제때 비가 오지 않으면 곧잘 흉년이 들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된 대흉년 사건은 대부분 하나님의 특별 섭리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이삭이 이동한 그랄(Gerar)은 ‘거주지’라는 뜻이다.
가나안 땅의 남쪽 경계선 지역에 위치한 풍요한 곡창 지대인 그랄은 아브라함이 한때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20: 1).
  ‘블레셋’(the Philistines)은 ‘이주자’라는 뜻이다.
블레셋 족속 초기는 ‘함’의 손자 ‘가슬루힘’의 후손들이 주류를 이루었다(10: 14). 후에는 지중해 연안의 여러 섬들로부터 팔레스틴 해안 지대로 이주해 온 사람들까지 포함됐다.
  ‘아비멜렉’(Abimelech)은 ‘왕이신 나의 아버지’라는 뜻인데, 사람이름이 아니라 블레셋 왕의 직함에 붙는 공식 칭호였다. 마치 애굽 왕의 칭호를 ‘바로’(Pharaoh)로 일컬음과 같다.
성경에는 아비멜렉이라 불리는 사람이 여럿 등장한다.
  이삭은 흉년을 피해 그랄 왕 아비멜렉이 다스리는 지역으로 이주했지, 블레셋 왕의 도움을 청하러 방문한 것은 아니었다.
이 때, 하나님께서 그랄에서 이삭에게 나타나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상속과 후손의 번영을 이삭에게 재약속 하신다(2-5).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급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2)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3)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4)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5)”
<하나님께서 믿음의 족장들에게 준 가나안 땅의 약속>

대상자
내용
성경
아브라함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창 12: 7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창 13: 14-17
이 땅을 네게 주어 업(業)을 삼게 하려고...
창 15: 7-21
너와 네 후손에게 이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창 17: 8
이삭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창 26: 3
야곱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창 28: 13-14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주리라
창 35: 12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더니”(So Isaac stayed in Gerar / 6)
  이삭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가나안 땅에 머무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앤드류 머레이’에 따르면, 성경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낙원의 상실에서부터 회복에 이르기까지 그 법칙은 변함이 없다. 생명나무와 하나님의 은혜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은 오직 순종뿐이다. 에덴동산에서의 불순종은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아버렸고, 요한계시록에서의 순종은 다시 그 길을 회복케 했다.
만약 우리가 어떻게 불순종이 순종으로 변하게 되었는지를 묻는다면 이 처음과 마지막의 중간에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해야 한다. <로마서 5: 19>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빌립보서 2: 8-9>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
<히브리서 5: 8-9> “그가… 순종함을 배워서…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구속사역은 순종함 가운데 이루어졌다.
같은 맥락에서 인간이 하나님께 그에 합당한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순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동참케 하시기를 원하시는 그 영광도 오직 순종을 통해서만 다시 얻을 수 있다. 주님께서는 인간을 이러한 순종으로 다시 회복시키셨다. 구원의 아름다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낙원, 갈보리, 천국, 이 모든 것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선언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여,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원하시는 제일 첫 번째의 소원도, 그리고 마지막 소원도 오직 단순하고 보편적이며 변함없는 순종일 뿐이다.”

위기
  그런데 이삭은 그의 아내 리브가를 누이로 소개함으로써 위험에 빠질 뻔 했다(26: 7-11). 일찍이 아브라함이 두 번씩이나 저지른 실수(12: 13 : 20: 2)를 이삭 역시 답습했다.
이삭은 그의 아비 아브라함과 동일하게 자신의 생명 보존을 위해 아내를 누이라고 사람들에게 속였다. 물론 그러한 소개는 사실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언약의 후손이 하나님의 약속과 보호의 손길을 의뢰치 못하고 인간적인 처세로 위기를 극복하려 한 것은 문제가 있다. 그 결과 이삭은 리브가를 블레셋 족속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주의 자녀를 “눈동자 같이 지켜 주신다”(신 32: 10). 성도가 언제 어느 곳에 처하더라도 그곳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을 느낀다.
  <시편 91: 1-8>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사는 자여(1)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2)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3)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내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4)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5)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6)
천명이 네 왼쪽에서, 만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7)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8)”


대상자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브라함과 사라
바로와 그 집에 재앙을 내려 사라를 지킴(창 12: 17-20)
롯과 그의 일가족
천사들을 보내시어 롯과 그 일행을 소돔성에서 구원(창 19: 12-29)
아브라함과 사라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 사라를 지키심(창 20: 1-7)
이삭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의 손으로부터 이삭을 구원(창 22: 1-14)
야곱
하나님이 라반의 꿈에 나타나서 야곱을 해치 못하게 하심(창 31: 24)
요셉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사 옥중에서도 형통하게 하심(창 39: 21-23)
<택한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 순종의 축복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12)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13)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이삭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블레셋 땅에서 목축과 더불어 농사도 병행하였다.
그 결과 이삭은 “그 해에 백배나 얻었다.”
‘백배’(메아 쉐아림)는 ‘백배의 분량’이라는 뜻인데, 이는 씨를 뿌린 비율로 해서 백배나 더 많이 거두었다는 뜻이다.
당시 블레셋 땅의 조건과 다른 블레셋 사람들의 수확과 비교해 볼 때, 이삭의 농사는 파격적인 소출을 거둔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보통 풍작을 거두었다고 할 때, 대략 25-50배의 소출을 거둘 뿐이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므로” 당시 유목민이었던 이삭은 농사일에 전념하는 정착민인 블레셋 사람들에 비해 훨씬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이삭은 “창대하고 왕성하어 마침내 거부가 되어”(The man became rich, and his wealth continued to grow until, he became very wealth / 창 26: 13), 계속적으로 창대해서 마침내 거부(巨富)가 되었다. 고대인들은 어떤 사람의 부와 재산 정도를 가축의 수로 나타내는 관습이 있다(창 32: 10).
“종이 심히 많아졌다”는 것은 당시 이삭 집안에 딸린 종들을 포함해서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모여든 종들 모두를 의미한다. 고대 족장 사회에서 가축의 수와 함께 노복(종)의 수도 부를 나타내는 척도이다.
▪ 순종하는 신앙
  순종의 가치를 다시 새롭게 가다듬고 새기자.
중국 ‘순(舜)’임금이 하루는 신하들을 불러 모아놓고 “이제 내가 너희들에게 망태기 하나씩을 줄 터이니 우물에 가서 물을 하나 가득 담아가지고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열댓 명의 신하들이 망태기를 하나씩 받아들고 제각기 흩어져 망태기에 물을 담아 보았지만 분명 곧바로 쏟아져 내릴 것이 분명하였는지라 아무도 물 담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한 신하만이 우물가로 가서 하루 종일 물을 퍼 담았다.
그도 물론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으나 어찌 임금의 명령에 거역할 수 있느냐는 심정으로 우직하게 하루 종일 몰을 퍼 담았다.
해질녘 우물의 물이 다했는지 아무리 두레박을 내려도 물이 올라오지 않자 그 신하는 허리를 펴고 우물을 들여다보았다.
그 바닥 한가운데 황금덩어리가 빛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신하는 얼른 그것을 올려다가 임금에게 가져다 바쳤다.
“수고했다! 내 말에 순종하는 자가 너 뿐이구나.
그것은 순종하는 자에게 주려고 내가 마련한 상급이니라.
그것을 네가 차지하도록 하여라.”
고대 일화이지만,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의 명령도 우리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 일진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복된 영혼이 되자.
순종은 과거의 신앙의 선조들에게만이 아니라 오늘의 저와 우리 성도들에게도 필요하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고 존중하고 믿고 사랑하며 순종하자.

<성도가 순종해야 할 대상>
* 하나님(신 13: 4; 삼상 28: 18)
* 그리스도(요 3: 36)
* 하나님의 말씀(대상 29: 23)
* 진리(벧전 1: 22)
* 복음(롬 10: 16)
* 선조의 바른 교훈(렘 35: 8,14)
* 부모(잠 30: 17)
* 육신의 상전(엡 6: 5; 골 3: 26)
* 통치자(딛 3: 1)
* 인도자(히 13: 17)
<성도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이유>
* 축복이 따르므로(신 5: 29; 수 1: 8)
* 하나님의 명령이므로(신 8: 1)
* 제사보다 나으므로(삼상 15: 22)
*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므로(마 7: 21)
* 주의 사랑을 받으므로(요 15: 10)
* 성도가 마땅히 할 책임이므로(행 5: 29)
* 옳은 일이므로(엡 6: 1)
* 주께서 순종의 본을 보이셨으므로(빌 2: 5-11)
* 성도에게 유익하므로(히 13: 17)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벧전 2: 13)
* 영생의 증거이므로(요일 2: 3-4)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에 따르는 축복>
* 자손이 번성함(창 26: 4-5)
* 거룩한 백성이 됨(출 19: 6)
* 하나님이 뛰어나게 하심(신 28: 1)
* 모든 소산을 풍요케 하심(신 28: 4)
* 하나님의 긍휼을 얻음(신 30: 2-3)
* 모든 일이 형통케 됨(수 1: 8)
* 보상을 받음(사 56: 1-7)
* 역경 중에도 보호됨(마 7: 24-25)
* 하나님의 가족이 됨(마 12: 50)
*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요 14: 23)
* 성령을 힘입음(행 5: 32)
* 의에 이름(롬 6: 16)
* 온전하게 됨(히 5: 8-9)
* 복을 받음(약 1: 25)
* 영혼이 깨끗해짐(벧전 1: 2)
* 영생을 얻음(요일 2: 17)

❚ 이삭과 우물 / 창세기 26: 12-25
  ‘우물’하면 떠오르는 단상 3가지가 있다.
레셀 크로우 주연 영화 “워터 디바이너”(Water Diviner, 2014),
‘이어령’의 󰡔우물을 파는 사람: 창조, 배고픔과 목마름의 끝없는 간구󰡕, 이삭의 우물파기이다.
▪ “워터 디바이너”(Water Diviner, 2014)
‘워터 디바이너’(Water Diviner)는 ‘수맥을 찾는 사람’(Waterfinder)​이라는 뜻인데, ‘레셀 크로우’ 주연의 영화 “워터 디바이너”는 호주의 메마른 땅에서 수맥을 찾아 우물 파는 일을 하며 아내와 세 아들과 같이 행복하게 살던 조슈아(러셀 크로우) 가정의 일화이다.  
  1차 대전이 발발했다. 제1차 세계대전(1914. 7. 28∼1918. 11. 11)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를 잇는 연합국 경제 블록’과 ‘독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라는 동맹국 경제 블록’의 격렬한 충돌이었다. 이 ‘독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라는 동맹국 경제 블록’에 오스만 투르크가 동맹국에 가담하면서 전쟁이 코카서스, 메소포타미아, 시나이 반도로 확대되었고 1917년 미국은 연합국(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처음엔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합국 입장에서는 흑해에서 지중해로 빠져나오는 전략적 요충인 ‘다르다넬스 해협’을 통제하던 오스만 제국이 독일과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불안 요인이었다. 중립을 지켰던 오스만 제국이 독일-오스트리아 측에 가담하여 흑해를 봉쇄하고 러시아를 공격하면 연합국인 러시아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판단한 영국과 프랑스는 선수를 쳐서 오스만 제국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
  당시 영국 해군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은 막강한 영국의 전함 십 수척과 순양함, 대규모 수송선으로 대함대를 편성하여 다르다넬스 해협을 돌파한 후 이스탄불을 포격하고 단숨에 병력을 상륙시켜 오스만 제국의 숨통을 끊는다는 작전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반해 오스만군은 무스타파 케말 대령(후에 아타튀르크)의 지휘아래 독일의 지원을 받아 다르다넬스 해협을 요새화하고 견고한 방어망을 구축했다.
  전쟁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처칠의 계획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처칠의 작전계획은 오스만 제국의 요새를 우습게 본 단순하고 비현실적이고 무모한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1915년 3월 18일부터 일주일간 벌어진 전투에서 영국군은 대패를 당한다.
전략을 수정한 영국군은 1915년 4월 25일 갈리폴리 반도 남단의 헬레스 곶에, 호주·뉴질랜드군으로 구성된 ‘앤잭 부대’(ANZAC, Australia and New Zealand Army Corps)는 북쪽으로 약 24㎞ 떨어진 아리부르누 등 두 곳에 75,000명의 병력이 상륙작전을 펼쳤다.
  그 동안 오스만제국은 10만 병력을 충원하고 참호를 파고 기관총을 설치하는 등 대대적으로 화력을 강화한 다음, 무스타파 케말은 병사들 앞에서 이런 연설을 했다.
   “우리가 무너지면 오스만 제국 본국이 무너지고,
   우리는 노예가 되는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제군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죽기 위해 싸워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개죽음이 아니다.
   오늘 우리들의 죽음이 조국을 지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며
   그대들 이름은 역사에 남을 것이다.
   나 역시 여기에서 무너지면 제군들과 같이
   시체로 뒹굴고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영국군이 상륙한 지역은 대규모 병력이 상륙하기에는 최악의 장소였다. 영국군과 앤잭부대는 상륙지에서 거의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고지대에서 아래를 향해 갈겨대는 오스만군의 대포와 기관총 세례에 병사들이 무참하게 죽어나가면서 8개월 동안 상륙지점에 고립되었다. 연합군은 상륙지점에서 단 1마일도 전진하지 못하고 해안에 발이 묶였다. 물도 구하지 못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선박 편으로 실어다 날라야 할 정도였다.
영국군과 앤잭부대는 8개월의 작전 기간 동안 252,000명, 투르크군은 151,000명의 전·사상자라는 큰 희생을 치름으로써 ‘갈리폴리의 비극’이란 칭호를 얻었다.
  바로 이 전장으로 아버지 조슈아(러셀 크로우)는 끔찍이도 아끼던 세 아들 ‘아서, 헨리, 에드워드’를 전장에 보내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갈리폴리(Gallipoli) 전투에서 세 아들이 한날한시에 전사했다는 통보를 받는다.
  극심한 슬픔과 우울감에 빠진 조슈아의 아내는 “수맥은 잘 찾으면서  왜 아들들은 못 찾느냐”며 울부짖고, 시신만이라도 찾아와 고향 땅에 잠들 수 있게 해달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아내마저 잃고 나자 “세 아들의 시신을 찾아와 고향 땅에 묻어 달라”는 아내의 마지막 부탁을 실행에 옮겨 혼자 터키로 향한다.
이후 영화는 조슈아가 터키에 머물면서 힘겹게 아들들의 흔적을 찾는 과정이 전개된다. 거기에 감복한 터키군과 영국군 양쪽의 도움을 받아 헨리와 에드워드의 유골을 찾아낸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뜻밖에 큰 아들 ‘아서’(라이언 코어)가 생존해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극적으로 만나게 되어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간다. “워터 디바이너”는 전쟁으로 인해 가족이 해체되고 수많은 사상자를 내는 폐해를 꼬집은 영화인데, 실화에 바탕을 둔 감동적인 영화이다.

▪ 이어령 말모음 󰡔우물을 파는 사람: 창조, 배고픔과 목마름의 끝없는 간구󰡕 (서울: 두란노, 2012)
이 책은 이어령 박사의 글 가운데 짧은 글귀를 뽑아 편집한 글이다.
이어령은 자신을 ‘우물을 파는 사람’으로 여긴다.
미지의 주제를 쫓아, 파란 수맥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쫓아 작가로서의 삶을 불태운다. 비록 그 모래의 밑바닥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심한 갈증이 그의 목을 태운다 할지라도, 아직도 그의 손은 곡괭이 든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이어령은 외친다.
“창조적인 발상은 아주 간단하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창조한 굳이 무엇을 만드는 것이 아닐 낯설게 하는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매순간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 이어령 말모음, 󰡔우물을 파는 사람: 창조, 배고픔과 목마름의 끝없는 간구󰡕 (서울: 두란노, 2012), 24-25.

  애플 신화의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외친 메시지, “배고프거라(still hungry), 어리석어라(still foolish).” Ibid., 33.

스티브잡스는 이를 통해 창조적인 삶을 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창조는 주류에 대한 도전이고 불가능한 것에 대한 가당치도 않은 도전이기 때문에 바보가 되어야 하고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어령은 외친다.
“아무리 세속의 조건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하더라도
나는 꿈(문학) 속에서 추락하리라.
나의 지식으로부터 재력으로부터 명성이나 박수소리로부터
자진해서 추락하는 꿈을 꾸어야만
내 신장(身長)은 멈추지 않고 커갈 수 있을 것이다.
사막의 신기루에 속지 않기 위해서.” Ibid., 34-35.

  “지성과 이성이 사라지고 영성만 남으면 도에 넘치는 열광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종교가 탄생한다. 기독교는 이성과 지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자성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성과 지성이 없어져야 영성이 맑아진다는 태도는 성립될 수 없다.
누구나 가슴 깊이 파고 들어가면 거기 영성의 수맥이 흐르고 있다.” Ibid., 248-249.

  “개인과 집단, 즉 나와 우리를 모르면 기독교를 이해할 수 없다.
집단으로서의 나를 나의 나로 만드는, 근대인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역할을 한 것이 기독교다. 배고프고 목이 말라 끝없이 무언가를 갈구하는 것, 이것이 신앙의 첫걸음이다.” Ibid., 260-261.


▪ 이삭의 우물파기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14)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판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15).”
  이삭의 번창에 대해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을 시기했다.
‘시기’(猜忌, envy)는 “미워하여 마음이 불붙게 된 상태‘이다.
블레셋 사람은 단순히 이삭을 미워하는 정도가 아니라 해칠 어떤 악한 감정까지 가지고 있었다. 외지에서 이주해 온 나그네가 자신들의 영토에서 자신들보다 더 풍요로움을 누리는 것에 블레셋인은 반발했다. 이처럼 남의 성공을 시기하는 좋지 못한 습성은 블레셋으로 대변되는 세상 사람들의 심성이다.  
  시기심으로 불탄 블레셋은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다”(15).
‘아브라함의 우물’은 팔레스타인 남부 네게브(Negev)에 위치한다. 네게브는 불모지로서 인간이 살 수 없는 사막지대이다.
물론 각종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에는 수로를 개발하여 도시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과 같은 첨단과학 시대에 불모지에 인간이 거주한다는 것은 납득할 만하지만, B. C. 2000년경에도 사람이 살 수 있었을까? 성경은 이 질문에 단호히 ‘그렇다’고 답한다.  창세기 21: 22-34과 26: 17-19에 따르면, 네게브의 ‘브엘세바’에 아브라함이 우물을 소유하고 목축을 길렀고 이삭이 우물을 팠다.
1954년 브엘세바 남쪽 입구에서 발굴을 시작하였는데.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B. C. 4000∼3,000년경의 유물이 출토했다. 그 유물들은 도기제조판, 각종 장식품. 아라비아에서 수입한 광석으로 만든 동제품 등과 밀 보리 콩 등을 재배했던 흔적과 양 염소들을 목축한 흔적이 발굴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지려면 물이 공급 되어야 한다. 고고학연구팀이 지역을 더 탐사해 본 결과 수많은 도랑을 발견했다.  이는 빗물을 보존할 수 있도록 복잡한 배수법을 이용하여 설치된 것이다. 또한 그 때, 아브라함의 우물들이 발굴되었는데 지금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히 만들어졌다. 놀라운 일이다.
  고대 사회에서나 오늘의 시대나 이런 귀중한 우물을 막고 메우는 행위는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었다.
아브라함의 우물을 메우는 블레셋의 만행은 이삭에게 그 땅을 떠나라는 추방의 의미를 담고 있다.
  블레셋 사람들과 이삭 사이의 사적인 불화와 갈등은 블레셋의 군주 ‘아비멜렉’에게 까지 비화되었다. 아비멜렉은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의 우물을 막고 메우는 행위를 통해 강제 추방 의사를 분명히 전달한다.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창 26: 16).
  창세기 26: 17에 따르면, 이삭은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그 아버지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다”(창 26: 18). 비록 아비멜렉의 부당한 요구에 한 마디 대꾸도 없이 자신의 처소를 옮기는 이삭의 모습은 이삭의 강직하고도 강인하며 온유한 성품을 잘 드러낸다.
<이삭이 판 4개의 우물>
  첫째, 에섹(קשׁע)
‘억압하다, 강탈하다’는 뜻을 지닌 이 말은 이삭의 번성을 시기한 블레셋 사람들이 불법적 행위로 이삭을 이해하였음을 보여준다(창 20: 6). 우리는 타인에게 가해하지 않을지라도 외부의 힘에 의해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이 세상이 악하며 죄악 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둘째, 싯나(הנטשׂ)
‘공격하다, 대적이 되다’는 뜻을 지닌 ‘사탄’(ןטשׂ)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이 단어의 명사형은 ‘대적(삼상 29: 4). 사탄(욥 1: 6)’으로 번역된다. 이는 불법의 세력은 선량한 자를 곤경에 빠뜨릴 뿐 아니라 계속 공격함으로써 파멸에 이르게 하려는 속성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마치 사단이 욥을 경제적 육체적으로 시험하여 영적 파멸로 이끌어 가려는 것과 같다.
  셋째, 르호봇(תובתר)
‘넓다(겔 41: 7), 화창하다(사 60: 5), 크게 열리다(삼상 2: 1)’는 뜻을 지닌 ‘라하브’(בתר)에서 유래하여 ‘넓은 장소, 확장’의 뜻을 지닌 이 말은 이삭이 어려움을 인내한 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음을 보여 준다. 즉 폭력을 폭력으로 대항치 않고 믿음, 소망, 사랑으로 참을 때 하나님께서는 욥을 축복해 주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상처를 치유하며 보상해 주신다는 믿음의 고백이 투사되어 있다.
  넷째, 세바(עבשׁ)
‘7번 말하다’에서 ‘맹세하다’로 의미가 전이 된 ‘세바’(עבשׁ)에서 유래하여 ‘맹세’라는 뜻을 갖는 이 지명은 이삭의 완전한 승리를 보여준다. 즉 가해자였던 블레셋 왕과 군대 장관이 찾아와 평화의 맹세를 요청한 것(창 26: 26-33)은 당시 이삭의 군사력과 경제력 및 인간성에 대한 굴복을 의미한다.
  이처럼 이삭이 판 4개의 우물의 이름을 차례로 모아놓고 볼 때,  이삭이 처음에는 이웃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지만 이를 참고 용서하여 마침내는 오히려 그들로부터 더 큰 존경과 인정까지 받게 된 것을 웅변한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Let us not become weary in doing good, for at the proper time we will reap a harvest if we do not give up / Gal. 6: 9).  
관대하게 남을 용서하며 이웃에게 빛과 소금의 삶을 사는 하나님의 사람은 일시적으로는 고난을 당하나 결국은 사단의 세력과 인간의 강포를 이겨내는 승리의 사람이다.
  이삭은 순종과 화해의 본이 된다. 우리가 세상과 화해하는 것이 그들과의 타협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통해 명백한 하나님의 의와 위대하심이 드러나는 그 때, 우리와 세상과의 진정한 평화의 길이 열린다.
“평화에도 승리가 있다. 그것은 전승만 못지않게 칭찬받을 일이다”고 ‘밀턴’은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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